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온 날은
내 입던 옷이 깨끗해진다
멀리서 부쳐 온 봉투 안의 소식이 
나팔꽃 꽃씨처럼 우편함에 떨어진다
그 소리에 계절이 활짝 넓어진다
인간이 아닌 곳에도 위대한 것이 많이 있다
사소한 삶들이 위대하지 않다고 말할 권리가 나에겐 없다 
누구나 제 삶을 묶으면 몇 다발 채소로 요약된다
초록 아니면 보라로 색칠되는 생이 거기 있다
풀꽃의 한 벌 옷에 비기면 내 다섯 벌의 옷은 너무 많다
한 광주리 과일에 한 해를 담아 놓고
아름다운 사람은 햇빛을 당겨 와 마음을 다림질한다
추운 발자국을 나뭇잎으로 덮어 주지 못한 걸 후회하는 사람
파란 이파리 하나를 못 버려 옷깃에 꽂아 보는 사람
아름다운 사람은 오늘 밤 스무 번째의 별 이름을 짓는다




스무 번째의 별 이름
이기철
(2017. 8. 15.)



길을 걷는데
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
봄이야
그 말을 하나 하려고
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 
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
나무 한 잎 피우려고 
잠든 꽃잎의 눈꺼풀 깨우려고
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
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
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
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
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
말을 걸며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다
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
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
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
봄이야
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기울여본다
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다가
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


햇빛이 말을 걸다
권태웅
(2017. 4. 9.)



인간은 누구나
스스로의 여름만큼 무거워지는 법이다.
스스로 지나온 그 여름만큼
그만큼 인간은 무거워지는 법이다.

또한 그만큼 가벼워지는 법이다.
그리하여 그 가벼움만큼 가벼이 
가볍게 가을로 떠나는 법이다.

기억을 주는 사람아
기억을 주는 사람아 
여름으로 긴 생명을
이어주는 사람아

바람결처럼 물결처럼
여름을 감도는 사람아
세상사 떠나는 거 
비치 파라솔은 접히고 가을이 온다




구월의 시, 조병화 
(2016. 9. 4)